[과학] 자연주의가 몰고온, 화학물질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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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가 몰고온 화학물질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
우리 모두는 자신이 자연계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고 느낀다.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미국의 생물학자.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며 등의 저서가 있다. 이 저서를 한국어로 번역한 최재천 교수의 은사이기도 하다)은 이런 감정을 “생명애”라고 부른다. 우리와 다른 형태의 생명체와 교류하고 싶다는 욕구를 뜻한다. 이런 종류의 연대감은 크나큰 정서적 만족감을 안겨주며, 분노, 불안감, 통증 수위도 낮춰준다. 인류라는 종이 생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는 주변의 환경과 생태계에 기본 삶을 의존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생명애의 극단적인 변종이 출현했으니, 바로 “화학물질 공포증”이다. 현대의 합성 화학물질이라면 덮어놓고 반사적으로 거부하는 현상을 말한다.
화학물질 공포증은 현대의 환경 운동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레이철 카슨의 저서 (1962년)은 “방사선이나 다름없는 사악한 존재지만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며… 살아 있는 유기체에 들어가 다른 유기체에 전달되어 중독과 죽음의 연쇄반응을 일으킨다”와 같이 화학물질을 악마 같은 존재로 묘사했다. 물론 카슨의 책은 무연 휘발유, 미국의 대기관리법, DDT 사용 금지를 비롯하여 중요한 환경 문제를 크게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덕분에 이 세계는 그만큼 청정해졌다 하더라도, 화학물질 반대운동은 너무나 양극화된 나머지 모든 인공 화학물질을 오염물질로 취급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잘못된 억측 때문에 대중은 “천연,” 심지어 “화학물질이 없는” 제품을 만들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사실 대개의 “천연” 제품은 우리가 실험실에서 만들어내는 그 어떤 제품보다 화학적으로 복잡한 성질을 갖추고 있다. 그 예를 보여주기 위해 아래에 평범한 바나나 하나에 들어 있는 성분을 나열해 보았다. (지면상 DNA를 포함하여 극소량으로 들어 있는 수천 가지 성분은 제외했다.)
(바나나) 성분:물(75%), 당(12%) (포도당 48%, 과당 40%, 자당 2%, 엿당 <1%), 전분(5%), 섬유소 E460(3%), 아미노산(<1%) (글루타민산 19%, 아스파라긴산 16%, 히스티딘 11%, 류신 7%, 리신 5%, 페닐알라닌 4%, 아르기닌 7%, 발린 4%, 알라닌 4%, 세린 4%, 글리신 3%, 트레오닌 3%, 이소류신 3%, 프롤린 3%, 트립토판 1%, 시스틴 1%, 타이로신 1%, 메티오닌 1%), 지방산(1%) (팔미트산 30%, 오메가-6 지방산: 리놀레산 14%, 오메가-3 지방산: 리놀렌산 8%, 올레산 7%, 팔미톨레산 3%, 스테아르산 2%, 라우르산 1%, 미리스트산 1%, 카프르산 <1%), 회분(<1%), 식물 스테롤, E515, 옥살산, E300, E306(토코페롤), 필로키논, 티아민, 색소 (노랑-오렌지 E101 (리보플라빈), 노랑-갈색 E160a), 향료 (3-METHYLBUT-1-YL 아세테이트, 2-METHYLBUTYL ETHANOATE, 2-METHYLPROPAN-1-OL, 3-METHYLBUTYL-1-OL, 2-HYDROXY-3-METHYLETHYL BUTANOATE, 3-METHYLBUTANAL, 에틸헥사노에이트, 낙산에틸, 펜틸 아세테이트), 1510, 천연 숙성제(에텐 가스).
이 예를 보면 더 중요한 요점이 들어 있다. 천연 화학물질과 합성 화학물질을 구분하기란 애매모호한 정도가 아니라 그런 구분 자체가 없다는 점이다. 어떤 성분이 합성이라고 해서 그 성분이 무조건 위험하다는 의미는 아니며, 천연 성분이라고 해서 안전하다는 뜻도 아니다. 꿀 속에서 번식하는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보툴리늄은 납보다 13억 배나 독성이 강하므로 유아에게는 절대 꿀을 먹여서는 안 된다. 사과씨 한 컵에는 성인 한 명을 죽일 만한 양의 청산가리가 들어 있다. 천연 화학물질은 그 양과 사용 방법에 따라 이로울 수도, 별 영향이 없을 수도, 해로울 수도 있으며, 이는 합성 화학물질도 마찬가지다. 화학물질이 “천연”인지 아닌지가 그 물질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요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천연 성분과 합성 성분에 대한 오해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포름알데히드(포르말린)에 대한 불안감이 그 좋은 예다. 포름알데히드는 과일, 식물, 육류, 계란, 나뭇잎에 들어 있는 천연 성분이다. 포름알데히드가 베이징 덕(120ppm), 훈제 연어(50ppm), 가공육(20ppm)에 고농도로 들어 있는 것은 전통적인 가공 과정에서 비롯되는 일반적인 결과일 뿐이다. 건강한 인간의 체내에도 포름알데히드가 약 2ppm 들어 있어 DNA 생성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또한 포름알데히드는 여러 업계에서 방부제로 쓰이고 있다.
사람들은 포름알데히드가 주변의 갖가지 “천연” 자원에 들어 있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백신과 화장품에 들어 있는 “인공” 포름알데히드는 극소량조차도 격렬한 항의의 대상이 된다. 이 세상의 모든 포름알데히드는 화학식이 CH2O로 동일한데도 말이다. 2013년 존슨앤존슨(Johnson & Johnson)은 스킨케어 상품 세트의 성분을 변경하느라 1천만 달러가 넘는 돈을 썼다. 해당 세트 제품에 들어 있는 포름알데히드의 양은 평범한 사람이 하루에 4천만 번 목욕을 하면서 써야 위험한 수치에 다다를 정도로 적었는데도.
백신 역시 포름알데히드가 극소량 들어 있다. "인공” 포름알데히드를 우려하는 목소리 때문에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 백신(100µg)에 들어 있는 포름알데히드의 양은 배 한 개(12,000µg)에 들어 있는 포름알데히드의 80분의 1 수준이다. 백신을 접종받은 어린이의 핏속에 들어 있는 “천연(!)" 포름알데히드의 농도를 측정 가능한 수치만큼 변화시키지도 못하는 양이다. 이처럼 백신 속 포름알데히드의 양은 전혀 해를 끼치지 않을 만큼 적지만, 포름알데히드 때문에 백신을 거부한 탓에 최근 몇 년 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독일, 웨일스에서는 홍역이 유행하는 등 백신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죽음이 번지기도 했다.
공포와 싸워 물리치는 일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과학계는 “화학물질 공포증”을 동성애 혐오증이나 외국인 혐오와 같은 “비임상적 편견”이라고 설명한다. 즉 의학적 원인에 따른 공포증이 아니라 학습으로 얻은 혐오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몇 가지 퇴치 전략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해결책 대부분은 학교에서 시작된다. 고등학교와 대학 화학 시간에 교사와 강사들이 화학 실험실은 오염물질을 잔뜩 만들어내는 더러운 곳이라는 생각에 맞서야 한다. 어떤 학생이 내게 “오염될까봐 실험실에서 밥도 못 먹는데, 그런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음식이 어떻게 안전할 수가 있죠?”라고 대꾸했던 것처럼 말이다. 화학 교실에서 지켜야 할 안전 수칙을 완화해서는 안 된다. 그런 수칙은 반드시 필요할뿐더러 화학 교사로서 지켜야 할 법적 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전 수칙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있다. 업계 품질 관리와 정제 기법을 자세히 들려주어 인간이 사용해도 안전이 보장되도록 화학제품 순도에 지극히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소비자들에게 “천연” 제품이 항상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정보를 전달하여 건강관리 측면에서 보다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장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마케팅 용어를 보다 엄격하게 규제할 필요도 있다. “천연”과 “오가닉”이란 이름을 단 개인생활용품 글로벌 시장은 2020년이면 160억 달러 규모로 불어날 전망이지만, 이런 제품 중에 동일한 성분이지만 “합성” 물질을 넣은 다른 제품에 비해 더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된 경우는 드물다. “순수”라는 수식어는 단일 성분으로 만들어진 제품에만 붙어야 한다. “천연” 제품은 자연에 존재하는 형태 그대로 판매되어야 하며, 화장품이나 여타 제품에 “천연”이란 마케팅 용어를 붙이는 행위는 금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화학물질 없음”이라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표현을 제품 라벨에 명시하는 일을 중단시켜야 한다.
화학물질 공포증의 뿌리는 깊다. 인간은 자신에게 닥쳐오는 위험의 중요도를 비합리적으로 과대평가하는 고정관념이 있다. 미국인은 테러로 죽을 확률보다 심장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35,000배나 높지만, 테러는 사람들의 근심걱정 목록에서 꼭대기를 차지한다. 화학과 독성학 지식을 바르게 아는 것만이 보다 합리적이고 건강한 방법으로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판단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화학물질 공포증은 다시금 생명애로 돌아가, 인간으로 하여금 우리 주변의 모든 세계와 화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을 지닐 수 있게 할 것이다.
출처 : Aeon
원제 : ‘Chemophobia’ is irrational, harmful – and hard to br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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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비문학 연습하라고 올려주시는거에요?
ins 님 등급 올리시려고...
이거 이광복선생님이 쓰는거죠?
매번 좋은글 감사합니다 ♥
와 이번 글 좋네요 취향저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