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어원 이야기: "언니=형님"의 가능성
'언니'라는 단어는 사실 19세기 말에야 문증되기 시작하는, 친족 어휘 중에서는 비교적 따끈따끈한 어휘이다. 이 갑자기 튀어나온 어휘의 어원을 다루는 기존 설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 고유어 형태소의 결합설. 母을 뜻하는 어근 '*엇('어ᅀᅵ'에 보이는 그 어근)에 모종의 접미사 '-니'가 결합해 '언니'가 되었다는 주장. 그렇지만 만약 그랬다면 어째서 중세국어나 근대국어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어근 '*엇(母)'은 근대국어에는 쓰이지 않았으므로 만약 '언니'가 파생되었다면 고대 아무리 늦어도 중세국어에선 '언니'의 선대형이 형성되었어야 한다.
- 일본어 ‘ani(あに)’ 유래설. 형태가 유사한 다른 고유어가 없다는 점에서 다른 언어에서 차용됐다는 주장. 그렇지만 19세기에 차용되었다기에는 하필 기초어휘 중의 기초어휘인 친족어휘가 차용됐다는 점이 문제이다. 신문물의 명칭도 아니고 '동성의 손위 형제를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 차용되기는 어렵다.
그래서 다카요시(2020)에서는 '언니'는 사실 한국어 내적 변화에 의해 형성됐다고 보고 그 변화를 육아어에서 찾았다. 육아어란 성인이 유아를 대상으로 말을 할 때 유아가 발음하기 쉽도록 변형된 단어를 얘기한다.
우선 '어니'가 먼저 등장하긴 하지만 '언니'보다 고작 30년 일찍 문증되기 때문에 문헌만으로 무엇이 선대형이라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지리적으로 ‘어니’의 사용 지역이 서울에서 떨어진 해안 지역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어니'가 고형일 가능성이 있다. 또 유아어에선 단비음보다 장비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엄마', '맘마', '맴매' 등이 그러하다. 이미 육아어가 된 후의 변화라고 본다면 '언니>어니'보다 '어니>언니'가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형님'에서 바로 '언니'가 나왔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이 논문에서는 '언니'의 기원을
- 형님>어니>언니
- 형님>언니
이렇게 두 가지로 본다. 다카요시는 육아어 연구 내용을 인용하면서 '형님>언니/어니'라는 과정은 한국어 음운사에서는 드물지만 육아어의 특징에는 부합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 /hj/ 탈락: 충청 방언에서 ‘형아’가 ‘엉아’로 변한 사례가 존재한다. 유아가 /h/나 /j/ 같은 음소를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에 '형님'의 제1 음절의 초성이 탈락하였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 /ŋ/ 탈락 및 ‘ŋ > n’ 변화: ‘형님’의 중간 자음 /ŋ/이 사라지거나 /n/으로 대체된 것은 유아 언어에서 조음 위치 동화와 자음 탈락 경향과 일치한다. 자음 연쇄 /ŋn/에 포함되어 있는 두 자음은 서로 조음 위치가 다른데 18개월 이후 유아 언어에서는 조음 위치가 다른 자음 연쇄에서 한 자음을 탈락시킨다고 한다. 그렇다면 '형님>엉님>어님'이라는 변화를 상정할 수 있다. 또, 유아어에서는 /ŋ/ 이 치경음 앞에서 [n]으로 발음되기도 하는데 ‘깡총깡총 → [kʼɑnʨʰoŋkʼɑnʨʰ oŋ]’이 있음. /ŋn/을 기피하기 위해 /ŋn/이 /nn/이 됐을 수도 있다.
- /m/ 탈락: ‘-님’이 ‘-니’로 변화한 것은 유아가 /m/ 같은 자음을 발음하기 어렵다는 육아어의 성격을 반영한다. ‘어마니, 아바니, 할아바니, 할마니, 아주바니, 아주마니, 조부니, 누니’와 같은 친족어의 ‘-니’는 사실 '-님'에서 왔다. ‘-니’형에는 꼭 선행하는 시기에 대응하는 ‘-님’형이 존재한다는 점과 ‘-니’형과 ‘-님’형 사이에는 의미적인 연결이 존재한다는 게 그 근거로, ‘형님>언니/어니’에서 상정되는 ‘-님>-니’의 변화를 ‘어마님 > 어마니’ 등의 변화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임금님’을 나타내는 ‘임금니’, ‘선생님’을 나타내는 ‘선생니’라는 육아어가 없는 것처럼, ‘-님 > -니’ 변화는 친족어에 한정된다. 이는 친족어가 유아 생활에 매우 중요하고, 아직 발음에 대한 제약이 많은 시기부터 사용해야 하는 어휘기 때문이다.
이 '-님'이 다소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다카요시는 ‘형님’의 ‘-님’이 격식과 존경의 의미뿐 아니라 친근함을 나타낼 수 있다고 봤다. ‘해님, 달님’과 같은 예에서 보이듯이, 유아와의 소통에서 긍정적인 정서를 나타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언니'는 현재 여성 사이에서만 쓰이는 말로 여겨지지만 원래는 남성 사이에도 쓰이던 말이었다. 한영자전(1897)에서 '어니'를 동성이기만 하면 쓴다고 뜻풀이하였다.
그니까 19세기 말 문헌에서 ‘언니’와 ‘형님’은 연상의 동성 동기를 나타내는 유의어였다는 거다. 당시 ‘언니’는 남녀 구분 없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현대의 ‘언니’와는 다른 '언니/어니'가 사실은 ‘형님’에서 출발해 어린아이에게 친숙한 육아어로 변형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나 더 중요한 점은 경상도 방언에서는 ‘형님’과 ‘언니’의 성조가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韓國精神文化硏究院(1989: 141, 1993: 130)에 따르면 경상도 방언에서 ‘형님’도 ‘언니’도 성조가 [HM/高中]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어 기원설보다 '형님'의 변화에서 '언니'가 형성되었다는 설이 훨씬 개연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 문헌
다카요시 (2020), "‘언니’ 어원고(語源攷)", 국어학 93, 국어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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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은 대부분 인정 안할걸요
아 예외적으로 기억나는건 닭도리탕 같은건 있지만요
어원고의 '고' 한자 저거 맞아요??
네 생각할 고 攷 맞습니다
보통 考 쓰지 않나... 신기하네요
오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