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gnita Sapiens [847641] · MS 2018 · 쪽지

2019-05-09 20: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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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계(reverse engineering)란 무엇인가

게시글 주소: https://video.orbi.kr/00022703777





 이번 편은 일단 공학의 한 개념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여태 수능 국어에 대한 책 쓴다고 인지과학, 심리학, 전쟁사, 역사, 직업 등의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문과적인 이야기나 컨셉을 자주 사용했었습니다.



 아마 이번 칼럼을 시작으로 제가 수학도 건드리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개념은 분명 공학적 개념이지만, 수능 수학에 써먹을 수 있는 생각입니다. 특히 '기하와 벡터'에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는 단어 그 자체로 설명이 끝납니다. 한글로 풀어쓰면 '거꾸로 생각해서 되돌아가기' 정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보통 공학에서 설계는 시작점이 존재합니다. 여러분이 매일 쓰는 샤프가 너무 잘 고장나고 불편해요. 그럼 개선을 하고 싶겠죠. 그래서 개선을 합니다. 재질이나 모양, 디자인을 좀 인체공학적으로 바꾸거나 보완해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욕구와 목표설정을 시작해서 결국 제품으로 이어지는 당연한 과정입니다.




 인간 세계에서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정도()가 있으면 패도()가 있는 법. 이런 일반적인 공학 과정과 반대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로 역설계입니다. 어떤 만들어진 제품을 보고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아, 설계자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겠구나. 대충 어떤 기술을 써서 개발한거구나 등등.








(일반적인 공학이 순차적으로 밟는 과정을 역설계는 거꾸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 역설계는 악명이 자자합니다. 보통 안좋은 일에 많이 쓰이거든요. 기술탈취, 산업스파이, 특허침해 등에 자주 활용되는 사고방식입니다. 어떤 회사에서 신제품을 만들면, 그걸 가져가다가 거꾸로 뜯어보고 모방해서 비슷한 제품을 자기 이름대고 개발했다고 우기는 겁니다.




 비슷한 일이 군수산업에서도 벌어집니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이 개발한 무기를 함부로 아무대나 팔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얼마전 한국에 최초로 도입된 스텔스기의 경우에도, 미국은 자국의 우방국에만 제공해줍니다. 함부로 상대방에게 팔았다간 신나게 분해당하고 분석당해서 기술탈취가 벌어지거든요.

(https://www.mk.co.kr/news/politics/view/2019/03/192122/)




 그래서 보통 무기를 수출할때는 핵심기술이나 핵심부품은 빼고 다운그레이드해서 파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물건이 상대방 손에 들어간 순간 충분히 역설계를 통해서 모방하기가 가능하기 때문이죠. 우리나라가 비싼 돈 들여서 뛰어난 기술 개발했는데 상대방은 그거를 거의 공짜로 모방해버리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뒤집어지겠죠?




 보통 전쟁 중 상대방의 무기나 전투기, 병기를 노획하면 신나게 뜯고 분해합니다. 상대방의 물건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술적 장점을 흡수하려는 것입니다. 일본이 미국에서 구입해온 스텔스기를 태평양에 잃어버렸을때 미친듯이 찾은 이유가 이것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가져가버리면 미국의 기술을 고스란히 갖다 받치는거랑 똑같습니다.




(현대에서 뛰어난 무기들은 엄청나게 비싼 기술로 만들어집니다. 상대방에게 병기가 탈취당할 것을 우려해서 자폭한다던지 소각하는 것도 기술유출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학생들은 수능 기출문제를 가지고 열심히 공부합니다. 저는 이미 여러편의 칼럼을 통해서 기출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출제진들의 핵심 기술이 담긴 무기를 들고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그걸 분석해서 출제자들이 가진 기술을 유출(?)하는 것이지요.




 수능 기출문제들을 통해 선생님들은 유추, 역설계를 합니다. 아 여기서는 뭘 물어보았구나. 그럼 이걸 원했던 거구나. 그렇다면 결국 출제진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문제를 낸거구나.




 이렇게 얻은 핵심 기술(출제진의 생각, 관점)을 가지고 사설모의고사나 선생님들이 문제를 만듭니다. 최대한 수능 문제와 비슷한 좋은 문제를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지금 제가 수능 국어에 대한 책을 쓴다는 것도 똑같습니다. 기출문제들을 살피고, 지문을 관찰해서, 출제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문제를 냈을지 역으로 상상하면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함수를 봤습니다. x에 5가 들어가면 10이 나오고, 6이 들어가면 12가 나오고, 8을 넣으면 16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런 결과를 통해서 역설계를 하면 최초의 함수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y = 2x 라는 함수를요. 이 함수에 똑같이 다시 x에 5넣고 6넣고 8넣으니 함숫값이 10, 12, 16이 나옵니다. 최초의 함수를 잘 유추한 것입니다.




 이렇게 역설계 아이디어는 수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럼 수능 수학에서, 어떤 파트에 제일 잘 활용할 수 있을까요? 저는 기하와 벡터 파트라고 생각합니다.




기하와 벡터 문제를 보면 뭐라고 합니까? 어떤 길이를 구하라, 넓이를 구하라 등을 요구합니다. 이걸 보고 여러분은 뭘 생각해야 합니까? 그 정답을 얻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역으로 유추해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기벡 문제에서 c의 길이를 구하라고 물었습니다. 그럼 뭘 구해야 c를 구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두말할 것도 없이 a랑 b를 구해야합니다. 그리고 나서 더 들어가는 것입니다. 다시 a와 b를 각각 구할려면 뭘 찾아야 하는지)









 분명 이런 역설계 접근은 다른 수학 분야에도 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느낀 바로는 기하와 벡터가 이런 사고방식을 활용하기에 최적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아마 기회가 된다면 이 칼럼을 시작으로, '역설계로 접근하는 기하와 벡터'라는 시리즈 물로 연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rare-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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