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하지말자 [401975] · MS 2012 · 쪽지

2017-11-24 18:18:17
조회수 13,787

연세대 공대 올해 졸업한 준아재입니다.

게시글 주소: https://video.orbi.kr/00014025459

오랜만이네요. 눈팅하는데 UI도 많이 바뀌고 낯섭니다.


우선, 모두들 수고하셨고 논술이나 면접 남은분들은 힘내세요!


제 소개를 하자면

연세대 공대 졸업하고 자대 대학원 입학해 대학원 찌끄래기인 석사과정입니다.


10,11,12년도 세번의 수능을 봤구요. 대부분 독서실,도서관에서 재수 했고 삼수 초반에 서초메가 100일정도 다녔습니다. 썡삼수입니다.


가장 싫어하는 음식은 칼로리바란스와 미숫가루구요, 

그 이유는

고2부터 한 4년동안 거의 모든 주말은 점심을 독서실에서

혼자 칼로리바란스와 미숫가루로 때웠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제는 혼자 밥 잘 먹습니다. 굉장히^^)



그래서인지 항상 수능시기가 되면 센치해집니다. 그래서 종종 오르비를 찾기도 하구요.


수능이 끝나면 항상 드는 생각은


"가장 좋은 시기에 나는 왜 그렇게 시험에 목맸나?"


입니다.



이제서야 솔직하자면 불안감과 열등감이 저를 수능에 목매게 했던것 같습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특기도 하나 없고, 취미도 없고.

대충 게임이나 잠으로 시간이나 허비하던 저에게는 입시는 마지막 희망였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인터넷에서 좋은 인강강사를 찾아다니고,

학교에서는 손목에 찬 시계로 순공부시간을 재고,

한석원과 손주은의 강연에는 마음이 뜨거워져 

엘리베이터 안에서 교복 단추를 풀고 집에 오자마자 옷을 벗고 잠드는 것을 목표로 공부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지요.


그랬더니 수능은 저를 향해 미소지었죠.

고등학교3년 내내 본 모의고사와 평가원을 모두 합쳐도

수능을 잘 본 것입니다.


근데 재수를 했습니다.

왜냐구요?


서울대를 안가면 안 될 것 같다고 느꼈거든요.

서울대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 그 이외에는 의미없다.

그렇게 원서는 정시 서울대만 쓰고 장렬히 탈락하고, 친구들과도 연락이 거의 끊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적도 상승 추세였고 미칠듯한 노력파니 일년만 더하면 뉴스에도 나올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독학재수는 멘탈이 깨져 우울과 불안, 공황으로 망치고

종종 홀로 지하철타고 서울구경하던 기억만 납니다.


재수 성적은 고3때보다 못했어요. 현역때 고대 공대정도였다면 재수때는 중앙대정도.

물론 누군가에게는 목표지만 열등감 덩어리였던 저에게는 서울대가 아니면 의미없었어요.


그렇게 책읽다 울고, 노래듣다 울고, 잘려고 누웠다가 울고 하던 시기를 보내고

서초메가에 들어갔죠.

그냥 자습했어요.

원래 자습만 하던 공부스타일이라.


재수때보다는 좀 더 나아진 멘탈로 세번째 수능을 보니 고3때보다 수학 한문제 정도 더 맞았더라구요.

허망했습니다.

그 지겨운 재수/삼수의 보상이 수학 한 문제라니.


하지만 아무 생각도 안들었어요.

그 시절에는 오르비도 눈팅 많이해서 원서라인도 어느정도 잡을 줄 알아 

추가1차정도에 붙겠지. 하던 공대에 지원해 추가1차합했습니다.


서울대 스나이핑은 실패했구요.


연세대 합격하던 날, 부모님은 좋아하셨지만 저는 아무 생각도 없었습니다.

반수 생각도 없었어요. 많이 지쳤거든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졸업해버렸네요?

세월 참 나빠요(?)


이제, 다시 묻습니다.


"가장 좋은 시기에 나는 왜 그렇게 시험에 목맸나?"


사실 아직도 아픈 질문 입니다.

다시 답변 합니다.


멍청 했다고.


솔직히 연대정도는 왔기에 하는 답변이라고 생각은 물론합니다.

그래도 아쉬운게 많아요. 그떈 왜 그리 맹목적이었는지.


그 이유는 하나에요.

기시감 떄문입니다.


대학에 와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느끼는게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항상 맹목적으로 살더라구요.


제가 수능준비하던 것 처럼, 취직에 목매고, 승진에 목매고

영어성적에 목매고, 스펙에 목매더라구요.


전 갑자기 그런것들이 환멸스러워졌어요.


그래서 좋아하던 인문학,사회학 책읽고, 소설도 쓰고, 술도 먹고

춤도 추고, 여자도 만나보려하고(제일 안 되지만), 요새는 연극도 해볼까 합니다.


조금은 나를 놓아주고 다채롭게 살고

내가 원하려는 것들을 하며 살아도

별일 없더라구요. 그냥 내가 즐거울 뿐이에요.


어쨋든 수능이 끝났어요. 

당신들도 좀 즐거워 지는게 어때요?


물론, 지금의 말들이

당장이 급한 사람한테는 배부른 소리라는거 압니다.

하지만 사는데 배라도 불러야하지 않겠어요?


행복할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던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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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멍 · 548081 · 17/11/24 18:20 · MS 2014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커피엔도넛 · 649641 · 17/11/24 18:20 · MS 2016

    대박입니다.. 행복하십쇼 화이팅

  • 비교하지말자 · 401975 · 17/11/24 18:27 · MS 2012

    궁금한거 쪽지나 댓글 받아여 ㅎㅎ 도움되면 고맙죠 제가~

  • 탈퇴 · 687039 · 17/11/24 18:28 · MS 2016

    구구절절 맞는말씀들. 재수동안 그런 맹목 환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제 행복할 수 있을거같아요 좋은글감사해요 !!

  • 사슴고기 · 477319 · 17/11/24 18:33 · MS 2013

    수능끝나고 한번 더 생각하시는분들한테 정말 유익한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 푸른너를본다 · 611708 · 17/11/24 19:52 · MS 2015

    진짜 와닿네요 감사합니다 행복해질게여

  • 민윤기베프 · 644659 · 17/11/24 20:09 · MS 2016

    수능 망한 재수생인데 이 글 읽고 울컥하네요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지만 꿈은 높았고 성적은 턱없이 부족히고.. 그냥 남들 다 가는 적당한 대학 들어가면 되는데 제 욕심과 열등감때문에 포기는 못하겠고 우울하고 자꾸 제 자신을 갉아먹네요 쨋든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ㅜㅜ

  • 쫑형(대박) · 575565 · 17/11/24 20:32 · MS 2015

    와. 그 스무살이후의 삶 책 저자분 아니신가요? 그 책 저 아직도 갖고 있어요 ㅎㅎ. 재수 끝나고인가 아니면 할 때인가 그때 사서 읽었었는데 독해력이 떨어져서 읽긴 읽었는데 저자분이 전달하고 싶었던 애기를 정확히 이해를 못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이번에 입시 다 마무리 되면 다시 한 번 읽어보려 해요.

    올해 나이 22인데. 벌써 내년이면 23이네요. 대학 그리고 학벌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올해 다시 도전하게 되었는데. 점수는 많이 올렸는데 현실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은 제가 원하는 목표치에 이르지 못해서 힘드네요. 심지어 방심했던 필수 한국사에서 등급을 낮게 받아 나머지 최저를 맞추었음에도 3개의 대학교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까지 박탈 당하니 너무 힘듭니다...

    미필이어서 군대도 가야 하는데, 제가 올해 원하는 결과를 받지 못하면 남들이 안하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할 때 , 제가 고집부려서 ( 당시엔 난 무조건 될 것이다라 생각했습니다.. ) 1년 더 투자한 것이 물거품이 될까 너무 두렵네요.

    물론 아직 논술 볼 수 있는 1개 대학이 남았고, 정시도 남아있기에 꼭 붙을거라고 생각중입니다만.. 두렵네요 이후의 과정이요. 잠깐 현재 휴학하고 다니고 있는 학교 다닐때도 수능이 전부는 아니었어라고 느낄 때가 있었는데 올해 다시 수험생으로 살고 하다보니 대학과 수능이 차지하는 크기가 큰 것 같다고 생각이 드네요... 후

    좋은 글 감사해요..!

  • 나직 · 478041 · 17/11/25 05:04 · MS 2017

    진짜 공감되는 글이네요. 사실 일부 직업이나 진급에 있어서는 학벌이 중요하긴 하겠지만 인생에서 그게 전부는 아닌데..가끔 지나다 오르비글 보면 학생들이 너무 맹목적으로 대학에 목숨거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제발 좀 우리나라 제도나 사회 의식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삶을 좀 즐기면서 사는 사회가 됐으면..